인사말
어느덧 찌는 듯한 무더위도 한풀 가시고 청량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천고마비 (天高馬肥)의 계절 10월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계절에 소암미술관에서는 엄기준기획초대전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 -캐피행성과 호모빅뱅인-”전을 개최합니다.
인간은 고작 100년 남짓한 인생을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머물다가는 여행자입니다. 하루하루를 육지와 바다, 하늘을 터전 삼아 다양한 동·식물과 생물들이 서로 맞물려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갑니다. 지구의 나이는 대략 45억 4000만 년입니다. 그 사이 공룡이 지구에 출현하였다가 멸종되었고,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약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 등장하여 약 7만 년 전부터 대규모로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확산하여 복잡한 언어와 예술, 그리고 종교 등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약 40여 년 전, 1980년대에 인류에게는 지구의 온실효과(溫室效果)에 대한 경고와 예견들이 TIME지와 같은 시사주간지에 대거 실렸습니다. 한 세대(世代)를 보내며 현실로 드러나는 열대화를 방불케 하는 뜨거워지는 지구는 산불과 해일,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기차가 탈선하는 철도사고, 도로의 싱크홀까지 예측 불가의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촌음(寸陰)을 다투며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엄기준작가는 지구의 환경문제와 맞물려 있는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ism) 의 폐해에 대해 가상의 선험적(先驗的)인 자본주의 모델인‘캐피행성(Capi-planet)과 호모빅뱅인(Homo-bigbang human)’의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번 소암미술관에서 나날이 황폐해져 가는 지구환경과 자본주의 폐해에 대한 새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해보는 시간이 되시길 기대합니다.
소암미술관장 양동호
전시를 열며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추분(秋分)을 지나며 소암미술관에서는 ‘엄기준기획초대전’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 – 캐피행성과 호모빅뱅인-”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 지구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고 있는 일들을 이미 경험하고 지구에 온 가상의 캐피행성과 그 친구들, 호모빅뱅인을 통해 지구의 생존 전략을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첫발을 내딛으며,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말과 함께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전해주어 수억 명의 인류는 최초로 지구를 지켜보았습니다.
1980년대에는 지구 온난화와 산업화로 육지에서는 남미(南美) 아마존의 거대한 원시림과 산림 등이 소실되었으며, 바다에서는 다양한 해일(海溢)과 빙하(氷河), 녹조와 적조로 인한 어패류의 패사, 하늘에서는 시기별로 찾아오는 태풍이 더욱 막강해졌습니다.
그 후, 지구는 점점 자연(自然)과는 멀어지는 인공(人工)과 가공(加工)의 것들로 채워지고, 생활의 편리함은 오히려 불투명한 지구의 미래를 가속합니다. 작금의 지구가 당면한 환경문제와 자본주의의 폐해는 마치 어린아이가 불난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喩品)」의 우화입니다. 아버지 장자(長者)는 화택(火宅)에 놀고 있는 아들을 집 밖으로 구출하려고 갖은 지혜를 짜냅니다.
엄기준 작가도 위의 장자처럼 아직은 미비(未備)하나 캐피행성과 호모빅뱅인이라는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을 통해서 인류가 아이들의 놀이처럼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보다 자연친화적이며 인간미가 넘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떼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그의 화업(畫業)을 살펴보면,
엄기준(嚴基俊, 1984- )은 대학 시절에 대학가 주변 골목에 널브러진 수많은 양(量)의 쓰레기를 보면서 현대사회의 구조적인 단면을 담은 쓰레기 섬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Hello sun>과 <P. island>으로 쓰레기로 망가져 가는 지구의 환경문제를 7년간(2009-2016) 여러 국가의 수많은 섬들의 해양생태계를 중심으로 조명하였습니다.
2015년부터 작가는 ‘자연과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서로의 모습을 비추는 투영(投影) 관계에 놓여 있다.’라고 생각하여 6년간(2015-2020) 인간의 내면세계(內面世界)를 다루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도하였습니다. 그러한 예로는 평면작품 <두 사람> 시리즈와 <그들의 공간> 시리즈입니다. 또한 토르소(torso)는 두상(頭像)에서 전신상(全身像)으로의 사실적인 인체표현에서 반추상(半抽象)으로 넘어가면서 특정 개인의 얼굴을 알 수 없는 무작위의 인간 군상(群像)입니다. 특히, 관람객의 호응이 컸던 황금색 토르소(torso)는 인간 내면의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의 단면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토르소는 케릭터를 절제하려다 보니 개인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 점점 사라지고 사회가 요구하는 형상으로 획일화되었습니다.
지난 3년간(2021년-2024년) 엄기준작가는 위 작업의 연장선에서 지구의 환경문제와 인류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환으로 캐피행성과 호모빅뱅인이라는 SF 공상과학과 만화(animation)의 캐릭터를 접목하여 이미 소멸해가는 캐피행성에서 온 호모빅뱅인이 지구의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Homo )를 계몽하고자 미래에서 지구에 왔다는 설정입니다. 서로 공명(共命)한다는 생존의 법칙을 가지고 호모빅뱅인도 지구의 자본주의체재 안에서 아르바이트나 소비와 사치도 즐기며 원하지 않은 일도 해가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설치+조각(50점), 설치영상(5-6점), 평면화(3-4점))등 총 60여 점을 선보입니다. 먼저, 조각작품인 호모빅뱅인 인형(1개당 30㎝×30㎝) 50개의 작품을 설치하고 효과음과 함께 이지러지고 분해, 해체되는 인형들의 변화 양상을 TV 모니터 영상에 담아 그 속에서 우리 인간의 모습들을 들여다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친화적인 하얀 종이 점토로 만든 호모빅뱅인에게 색색(色色)의 물총을 쏘아서 변화해가는 인형의 형태에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반조(反照)해 봅니다.
앞으로 이 지구상에 엄기준작가와 같은 장자가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장자는 불난 집에서 즐겁게 노느라 밖으로 나오지 않는 어린 아들들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양의 장난감을 대문 밖 수레에 가득 담아 밖으로 나오게 합니다. 지구와 캐피행성, 인류와 호모빅뱅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의 이번 전시를 통해서 어린 시절 달과 지구를 바라보았던 설레임처럼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학예연구사 양호열 학예연구사 정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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