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어느덧 변화의 기운이 강하다는 갑진년(甲辰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소암미술관에서는 나를 찾아 떠나는 길 위의 여정, 이양숙기획초대전 색(色)·향(香)·미(美)전을 개최합니다.
인생(人生)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무엇을 보고, 듣고, 향내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까?
우리 인생은 흔들리며 피는 꽃과 같습니다, 새싹이 나고 비바람을 맞으며 꽃이 피고, 지듯이 인생의 변화를 겪습니다. 그러나 밖의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 한잔을 두고 마시는 가운데, 마음은 늘 고요와 평온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열심히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밖의 파랑새를 찾았는데, 정작 파랑새는 내 집 정원에 있었습니다. 작가는 길 위의 여정에서 무엇을 찾았을까요?
이순(耳順)을 앞두고 이양숙 작가는 차와 그림과 예술로 일관해 온 자신의 삶을 담은 예술세계를 반추(反芻)해보고자 합니다. 대학에서는 응용미술을 전공하며 작가와 큐레이터로서 활동하였으며, 중년이 되어서는 차의 매력에 빠져 차문화를 연구하며 20여 년간 차인(茶人)의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중국 보이차를 접하면서 그녀의 삶은 외부로 보여주는 삶에서 내면의 깊이를 채워가는 삶으로 변모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작가는 7번의 개인전을 통해 한지와 천 등을 이용하여 다양한 장르의 공예를 접목한 부조작품들을 선보여왔습니다.
요즘도 중국과 한국, 동남아시아 등을 오가며 세계를 무대로 차를 찾아갑니다. 글로벌한 행보를 보이는 그녀의 삶 속에는 어떠한 길 위의 여정들이 수놓아져 있는지, 그리고 우리들의 삶 속에는 무엇이 함께하고 있는지 차 한잔을 곁들이며 색(色)·향(香)·미(美)를 탐색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시길 기대합니다.
소암미술관장 양동호
전시를 열며
갑진년 동지(冬至)를 맞으며 소암미술관에서는 이양숙 기획초대전 차와 미술의 만남, 색(色) · 향(香) · 미(美) 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의 색(色)·향(香)·미(味)는 차를 마시는 음다예의(飮茶禮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는 차의 색깔을 보고, 귀로는 찻물 끓는 소리를, 코로는 향기를, 입으로는 차의 맛을, 손으로는 찻잔의 감촉을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차를 마실 때는 물과 차싹을 준 자연과 정성껏 차를 끓인 이에게 감사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두세 번 나누어 마시되 머금어 굴리듯 마시면 풍미를 오래 즐길 수 있습니다.
이양숙(李羊淑, 1967 - ) 작가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지와 섬유, 공예작가로 활동하며 현재 갤러리 조이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또한, 20여 년간 차를 아끼고 즐기다가 중국 운남성 보이차에 심취하여 목포대 동양사학과(2023년)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보이차에 관한 차문화 연구』를 출간하였으며, 현재 동양차학예술문화원 원장과 차교육 등 차인(茶人)의 삶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녀가 걸어온 길은 그림과 차와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풍성한 예술가의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꿈(1점), 사랑(5점), 희망(1점), 그리움(1점), 차의 고향(1점), 망상(1점), 현타(1점), H. D. SI(2점), 구름(1점), 달(1점), 용(1점), 자화상(3점), 색·향·미(6점) 등을 소재로 총 28점의 평면 유화작품을 선보입니다.
이번 이양숙 작가의 삶의 여정을 소재로 한 ‘색(色)·향(香)·미(美)’전의 예술세계를 크게 4기로 나누어 보면, 우선, 1기에서 작가는 꿈과 사랑, 희망과 그리움, 차의 고향, 망상과 현타, 구름과 슈퍼문 등 보이는 현상들을 상하 이분법적 구도로 빨강, 노랑, 파랑, 청록, 핑크, 연두 등 튀는 형광색의 다양한 칼라의 오일 페인팅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만의 뚜렷한 감성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즉, 1기에 나타난 색의 세계는 꿈과 희망, 사랑, 그리움, 현타, 망상 등 보이는 세계에서 느끼는 탐욕과 욕망의 감정들을 표상합니다.
2기에서는 헝클어진 머리를 소재로 어리고 순수했던 모습의 러블리한 핑크빛과 하늘색이 어우러진 머리의 자화상 1점,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의 보랏빛 머리의 자화상 1점, 그리고 나를 놓아 버린 듯한 모습의 노랑색 머리의 자화상 1점, 총 3점을 선보입니다. 자화상은 이양숙 작가가 차를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색·향·미에 젖어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참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28점 작품 중 19점은 색의 세계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상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3기의 파란 바닷가를 그린 H. D. SI(2020) 2점과 회색빛 승천하는 용(2019)을 그린 작품에서는 작가에게 급격하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되는 부분으로 차와 명상을 통해 자신을 비워가는 작업을 하던 시기라고 추측됩니다. 이양숙 작가는 차를 공부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드는 선(禪) 명상을 통해 정신수양과 함께 선가의 회화이념을 바탕으로 한 우주 무한의 추상미를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H. D. SI(2020) 2점은 ‘나’라고 하는 아집(我執)을 버리고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 세계는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마지막 4기에서 작가는 하얀 네모바탕에 각각 대각선으로 핑크빛 색, 하늘빛 향, 핑크빛 미를 쓴 3점과 하얀 둥근 원의 중심 아래에 각각 노란빛 色, 하늘빛 香, 핑크빛 美를 쓴 3점 총 6점을 단순하고 담담하게 선보입니다. 이렇게 이양숙 작가는 자신의 삶의 변화과정을 형(形)과 색(色)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위 색향미 6점은 캔버스 위의 오일 페인팅이며 그림 대신 글씨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동양화의 선화에서 보이는 간(簡)·담(淡)·아(雅)·정(靜)의 표현들이 보입니다. 간은 간단한 필구(筆具)로 격을 높이는 예술 창작이요. 담(淡)은 참선이며, 아(雅)는 속기가 배제된 우아함이요, 정은 맑은 기운을 담은 일품화(逸品畵)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의 작품은 서양화와 동양화의 경계마저도 드러나 보이지 않는 담담한 본래 자리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가는 하나라는 추상의 이치를 깨닫고 나면 회화에서 속기를 초월하게 되고, 선을 종교적인 의미보다 인생 수양의 정신적 소양을 갖추는 것으로 고요히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산란한 생각을 그치고, 깊고 고요히 인간의 정신성을 심사(深思) 혹은 명상(冥想)하며, 오직 마음이 神(靈)과 합하면 회화의 도(道)를 이루게 됨을 말합니다. 이를 작가는 차를 통해 핑크빛 향기를 뿜어내는 자리로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색(녹색)에서는 인생의 시작과 기대, 그리고 좌절 등을 표현하였고, 향(핑크색)에서는 차를 공부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기를 거치며 자화상을 그리고 색의 경계를 넘어가는 피안의 세계를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과 같은 지난 세월을 용(龍)을 통해 드러내며 마침내 자신의 본래 면목을 찾는 전 과정을 찻물의 푸른 빛깔과 핑크빛 차향, 그리고 차맛의 최고의 경지인 아름다움을 노란 황금빛 미로 승화시키며 자신이 깨달음의 경계에 이르렀음을 색(녹색)·향(핑크색)·미(노란색)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예연구사 양호열
학예연구사 정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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